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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autiful ones *  *  
  Name  :  취중진담

1974년 8월부터 2004년 3월 13일 오후 10시까지 29년 7개월의 삶을 살았던 고 송채성 작가는 지금 한강성심병원 영안실에 ‘31세, 남자’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조금이지만, 실제로 살았던 삶보다도 길게 적힌 ‘31’이란 숫자가 더 미워집니다.

송채성 작가의 첫 단행본 [취중진담]이 출판되고 신문에도 오르락 거릴 때, 작품에 인쇄된 얼굴을 상상하던 전, 그의 실체에 놀랐습니다. 여드름보다 심한 피부에 자다가 부스스하게 정리 안 된 머리카락을 모자로 가린 송 작가에게 ‘사진은 사기’라며 놀렸습니다. 나이 차이를 부담스러워 해서인지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학교 선배임을 내세워 선배님이라고 부르던 송 작가는 그 날 저에게 이렇게 써 줬습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채성은 나쁩니다. 정말 나쁩니다.

순진하고 해맑은 영혼을 가졌던 것을 취중에도 맑은 눈으로 보여주던 송 작가는 첫사랑의 경험을 예전 같으면 아이 아빠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인 고3 때에 경험했다고 했었습니다. 첫사랑이 늘 그렇듯 헤어짐으로 정리되고 그 아픔을 잊기 위해 수험생임에도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만화에 묻혀 지냈었답니다.

데뷔 초기에 순정만화가로 분류될 정도의 작품 세계는 이 시기에 만난 순정만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남들처럼 순정만화는 거의 보지 않았던 소년 채성이 우연히 만화방에서 본 강경옥 작가의 [17세의 나레이션]이란 제목에 이끌려 그 만화를 펼친 순간, 그는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 충격의 실체는 '감정의 전이'였다고 했는데, 이후에 강 작가의 만화를 찾아서 섭렵한 뒤 순정만화의 세계를 탐닉하고 그 영역은 영화와 만화 전반으로 확대되어 갔다고 회고했었습니다.

만화를 좋아했지만 만화가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던 채성이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최근까지도 자신의 그림 실력에 아쉬움을 갖고 있던 채성이 자기 자신의 그림에 신이 났었던 기억은 군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군대의 그림이란 게 그렇듯이 포스터 한 장을 그렸는데 이것이 덜컥 연대장 표창을 받았었답니다. 그 이후로 남은 군 생활 내내 그림 담당 행정병으로 지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채성은 자신의 그림 실력에 우쭐해 있던 당시를 부끄러워하면서 술자리를 빌어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 전공이 맘에 들지 않아 대학을 옮기면서까지 적응하지 못하던 채성은 또 장기 휴학을 합니다. 그리고 젊은 날을 술과 술친구와 만화에 묻혀 지내게 됩니다. 집안에서도 평범하게 사회 진출을 준비하지 못하는 아들을 염려한 것은 당연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뚜렷한 목표 없이 방황하던 그에게 자칭 ‘신의 계시’가 내려집니다. 우연하게, 뚜렷한 목표 없이 <서울 국제 만화전>에 응모하여 카툰 부분에 3등으로 입상한 것입니다. 채성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나의 길이다’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 들였다고 당연한 듯 말하더군요. 신의 계시란 것이 범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그의 계시는 집안의 반대와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이 땅의 만화가들 대부분은 그 직면을 이겨낸 사람들이 더 많고 채성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스물 여섯 살 여름, 신의 계시를 받들어 만화가의 길로 접어 든 채성은 한겨레 문화센터 출판만화 창작반을 수료하게 되었는데, 동아리 활동 외에 유일하게 만화가로서의 수련을 한 기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스물일곱 살 여름, 채성은 또 한 번의 3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3회 1차 <서울문화사 만화대상>에서 그의 데뷔작으로 자리하는 [전국노래자랑]으로 동상을 수상합니다. 만화가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선 채성은 그해에 10월호부터 [취중진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한겨레 문화센터의 강사였던 강성수 만화가가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즐겨하는 채성을 보고 “네가 제일 잘 하는 것, 자신 있어 하는 것을 그려라”라는 말이 창작 동기가 됐다지만, 그 말이 아니었더라도 그가 풀어낼 이야기들은 취중진담이었을 터입니다. 내성적이지만 사람 자체를 좋아했던 그였기에 술이란 매개는 지근거리에 둔 또 하나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담아낸 취중진담은 그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것이 당연한 결과입니다.

<#1.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라는 에피소드에는 두 사람의 주연 남녀가 등장합니다. 대학 술친구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그가 술 마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나의 왕자는 이슬만 마실 뿐...”. 이렇게 시적으로 말하는 여자는 ‘그린 공주’로 불립니다. 그린 공주가 말하는 그 남자는 ‘이슬 왕자’. 그린 소주와 참이슬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할 이름들입니다. 이렇게 묘사된 그 여자는 채성이 대학 다닐 때 엄청난 카리스마로 인기가 대단했던 실제 인물이라고 말해 줍니다. 아마 그 여자는 공포의 주특기인 ‘쌍 병나발 불기’를 실제로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취중진담]을 내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친한 지인들과 술 한 잔 정겨이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술꾼이 아니라 술자리를 빌어 사람들 얼굴 보기를 좋아한 거고, 술기운을 빌어 내 안의 이야기를 쏟아 내는 걸 좋아했던 거였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술이 아니라 술잔 건너에 자리한 사람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술잔으로 보이는 세상이 투명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술로 인한 사람들의 가식 없음이 좋아서였을까요? 여하튼 채성이 술로 인한 어울림을 편하게 생각할 정도로 수줍음 많았던 것은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술이 그를 편하게 돕는 모습이 보였으니까요.

그의 작품들에는 그의 바람들이 녹아 있어 보입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은 현실을 그대로 옮긴 듯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지만 작품의 결론은 현실과 달리 희망을 포함하려 애쓴 것이 역력합니다.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채성이기에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것을 리얼하게 보여주더라도 약간의 희망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말이 그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희망이란 말을 덧없게 만들어 버린 어제의 소식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왜 아까운 사람은 일찍 세상을 등질까? 일찍 세상을 떠나서 그 사람이 아까운 것일까? 재작년, 역시 한겨레 만화센터 출신의 중구 씨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작품이 유작집으로 나왔을 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구 씨의 조카 혁진은 “꿈에 하늘나라에 가서 삼촌을 봤어. 길을 가는데 높이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어. 그 계단을 올라가니 삼촌이 마중 나와 나를 위해 만든 계단이라고 말했어.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 있고, 구름도 조금 있는 그곳에 삼촌은 좋아 보였어. 삼촌이 하얀 옷을 입고 있고 은색 날개가 달려 있었어. 삼촌 손을 잡았더니 내 옷도 은색 날개의 하얀 옷으로 변했어. 그렇게 놀다가 헤어질 때 삼촌은 다음날에 다시 보자고 했다”라고 꿈 이야기를 들려 줬습니다.

채성은 계단을 올랐을까?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순수한 청년 채성은 현실에서 이제 막 집안에서도 인정을 받아 가고 새 작품도 발표하고 여타 잡지에도 작품을 연재하면서 겨우 날개를 폈었는데 급작스런 체력 저하로 폐에 바이러스가 침범했다니. 그것이 이렇게 빨리 그를 거두어 가다니 믿기조차 어렵습니다.

영안실 직원의 “만화가인 줄은 모르고 서른 한 살 남자 맞아요”라는 덤덤한 소리에 믿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정철 작가의 공식 부고 안내를 보고서도 그가 차가워진 몸이란 걸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의식불명 상태였으면 고통이 없었으리라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지...
이 세상보다 저 세상이 그의 해맑음과 순진함을 더 보듬어 줄 것이라고 억지 이해를 해야 하는지...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가 생존해 있다면 만화가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상상해 봅니다. 채성은 자신이 순정만화가로 단순 분류되는 것을 껄끄러워 했습니다. 사건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독자들이 그런 분류를 하는 것 같다면서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혹은 그의 작품이 순정 잡지로 분류되는 매체에 발표되어 그런 개념이 생긴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런 대화 중에 그가 말하는 목표는 뚜렷해 보였습니다. 조금은 생경하게도 그는 ‘상업주의 작가’로 자신을 밝히더군요. 그 이유를 듣고 보니 생경함이 걷히긴 했습니다. 채성은 잘 팔리는 작품이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잘 팔린 만화는 역시 많은 사람이 본 만화이고 그것엔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들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견지하면서 상업성도 획득한 것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시장이 힘들어도 뛰어난 작품은 살아남는다면서 자기 작품을 더 열려 있게 만들려면 잘된 작품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모방이나 타협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채성은 이 과정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약속했습니다. 좋은 작품을 보여 주겠다고. 비록 취중에 한 말이지만 그는 취중이라고 해서 주사를 부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술이 들어가 맑은 속내가 더 쉽게 드러날 상태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영악하게 세상을 살지 못한 채성과의 약속이기에 회한은 더 큽니다.

영안실은 늘 춥습니다. 누워 있는 아버지를, 할머니와 삼촌과 숙모를, 친구를, 동기를 봤을 때, 그 때가 비록 여름이더라도 영안실은 추웠습니다. 누워 있는 그 사람이 이제는 나에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못하고 불러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추웠습니다. 남겨진 사람은 외로워서 춥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약속을 하고 살기에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서 춥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채성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좋은 곳으로 가시게나”...라는 상투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식상함에도 진심을 담아서 말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
......
<출처 :www.urimana.com 글:주재국(만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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