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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autiful ones *  *  
  Name  :  취중진담


소박한 눈물, 평범한 웃음 담은 <취중진담>
[살가운 만화 즐기기 15] 꿈만으론 못 살아도 꿈을 꾼 송채성님

최종규(함께살기) 기자    



  

<1> 세상을 떠난 만화가 한 사람

지난 2004년 3월 18일치 <한겨레>에 짤막한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어느 만화가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기사입니다.

재능있는 한 젊은 만화가의 갑작스런 죽음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취중진담> <쉘 위 댄스> <미스터 레인보우> 등으로 탁월한 연출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만화가 송채성씨가 지난 13일 오후 폐부종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29년 7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송씨는 현재 활동중인 순정만화가로는 유일한 남성 작가였다. 몸이 쇠약해져가는 와중에도 송씨가 만화작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하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한다

"현재 활동중인 유일한 남성 순정만화가"였다는 송채성씨. 그이는 <오후, 시공사>라는 만화잡지에 <미스터 레인보우>라는 만화를 이어싣고 있었습니다. 이 만화는 미처 연재를 마치지 못했으나, 송채성씨가 세상을 떠난 뒤 낱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림을 그린 이는 미처 보지도 못한 만화책이라니. 참 얄궂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기사나 새로 나온 책 소식을 한 귀로 흘렸어요. 낯선 이름이었고 낯선 책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며칠 뒤입니다. 출판사에서 디자인을 하는 선배와 만나서 술을 마시는 자리였는데, 선배는 저를 보고 "송채성이라고 아니?" 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후배 가운데 이렇게 만화를 그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며 술잔을 비우더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저보고 송채성씨가 그린 만화 가운데 <취중진담>을 사서 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보름쯤 뒤, 서울 홍익대학교 앞에 있는 만화가게를 뒤져서 <취중진담> 세 권을 찾아서 찬찬히 보았어요.

<2> 술 한 잔으로 돌아보는 사람들 이야기

송채성씨가 담아낸 <취중진담>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나이 젊은 사람이 나오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얽힌 사랑 이야기가 나와요.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민들이 즐기는 대상'을 그림감으로 삼은 건 <문흥미 그림-디스>와 사뭇 닮았습니다.

그런데 <취중진담>과 <디스>는 좀 달라요. <디스>라는 만화는 중고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나오지만 <취중진담>에 나오는 사람은 그만큼 넓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화에서 다루는 사람 이야기도 테두리가 대체로 좁다고 할 수 있습니다.

1권을 보고 2권을 보고 3권을 보면서, '참 좋구나. 이런 만화를 왜 진작 몰랐을까?'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끝까지 든 아쉬움이 있었으니, 지금 말한 그대로입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 너비를 조금씩 넓혔다면 훨씬 차분하고 그윽하면서 재미있는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고요.

그러나 이런 말도 이젠 다 헛것입니다. 송채성씨 스스로도 이런 대목은 대체로 알았겠지만, 이제 누구에게 말하라고요? 서른 살도 살지 못하고 '서른이라는 나이'에 부대끼는 아픔과 걱정과 슬픔과 사랑과 믿음과 웃음을 그린 송채성씨입니다.

<취중진담>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만화를 보니, 송채성씨가 나이 서른을 넘어서까지도 만화를 그렸다면 훨씬 더 깊고 넓은 세상살이를, 사람들 삶을 그렸겠다 싶어요. 서로 부대끼며 어울리고 치고박고 부딪치고 깨지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며 싱긋 웃는 이런 모든 것을 담아냈겠다 싶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3권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만화는 끝에 가서야 무엇이 '연극'이었는가를 알게 해 줍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어느 아가씨가 강제로 선을 보게 해 시집을 보내려고 하던 부모 앞에서 '남자친구가 있다'며 연극을 좋아하고 즐기는 동무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어찌어찌하다가 두 남녀 부모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데, 여자 쪽 어머니가 반대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중에 차츰차츰 알고 보니 아가씨네 아버지와 그 아가씨의 남자친구가 되어 준 어머니는 오랜 연인이었어요.

아가씨네 아버지는 집안에서 반대해서 끝내 그 연인과 혼인할 수 없었고, 그렇게 서른 몇 해 동안 속으로만 연인을 그리워하며 집안에서는 아주 차가운(냉정) 아버지로 '연극'을 하며 살았다는군요.


(아가씨) 더럽게 우스워...
(남자친구) 그러는... 넌...? 그렇게 말하는... 너의 연극은...? 알고 있잖아... 너도... 그럼에도 무언가를 잃을까 봐... 하고 싶어하는 연극이 아니라는걸... 끝없이 상처뿐인 연기를 하고 있는 나약한 자신을... 누군가의 아버지로...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친구로... 누구의 연극도 뭐라 할 순 없어... 단지 연극이 끝날 땐... 그 고단한 연기에... 진심어린 박수를 쳐줄 수 있어야 하는 거지... <78~81쪽>

3권에 나온 'Let it be' 이야기도 해 보겠습니다. 고등학생 때 짝사랑하는 세모 사이(삼각 관계) 이야기입니다. 한 남학생이 좋아하는 한 여학생이 있는데, 그 여학생에게는 좋아하는 다른 남학생이 있어요. 그러나 그 남학생은 공부에도 연애에도 아무런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말하지 못한 속앓이로 혼자 아파하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 남학생은 세상일이 잊고 싶고, 세상사람에게서 잊히고 싶어서 남들보다 일찍 군대에 자원해서 들어가요.


(주인공 남학생) 군대의 좋은 점은... 아무 생각이나 고민 없이도 그냥... 살아가게 해준다는 거... 가정 형편이 어떻든... 잘났든 못났든 간에 말야... 그래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거나, 버릴 것조차 없다는 거...
(후임병)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게 무식해지는 거지. 그리고 그만큼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들어와야 하잖습니까?
(주인공 남학생) 그래도... 버려질 바에야 먼저 포기하는 게 나아. <104~105쪽>

이렇게 군대에 있는 동안 고등학교 때 동무였던 녀석이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군대에 일찌감치 들어온 남학생을 좋아하던 여학생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죽어라 그 여학생을 바라보고 좇지만 자꾸만 멀어지며 슬퍼하는 아이. 그런데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여학생은 자기가 바라보는 남학생에게 말 한 마디 건네 보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앓아요.

그러던 어느 날 끝내 다짐을 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편지를 씁니다.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풀어놓을 기회조차 놓쳐버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으며 "그래서 이젠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하리라고, 그러리라고" 다짐을 한다고. 그래서 '너는 내게 소중한 친구다' 하고 못을 박고, 자기가 참으로 좋아하는 그 아이에게 자기 마음을 주겠다고 편지를 써요.

졸병으로 들어간 그 남학생은 가슴에 복받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지만, 이제 전역을 하게 될 자기 고등학교 적 동무(고참)에게 부탁을 해서 전화 한 통을 겁니다. 자기가 좋아하던 그 여학생에게요. 그 여학생이 좋아하던 아이가 여기에 있고, 곧 제대하니 마중나오라고요.

그리하여 여학생은 자기에게서 자꾸 멀어지려는 남학생이 제대하던 날 찾아가서 자기 마음이 담긴 선물을 줍니다. <취중진담> 세 권은 여기에서 끝을 맺어요.

  

<3> 소박한 웃음과 평범한 눈물을 담은 만화

언뜻 생각하면 뜨거울 것도 없으나 차가울 것도 없는 사랑 이야기가 만화책 세 권을 감돌아요. 이룰 듯 이룰 듯하다가도 이루지 못한다거나, 이루지 못할 듯 이루지 못할 듯하다가도 이루지 못하는 사랑이 감돌아요.

흔한 사랑,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사랑이 판을 치고 가득가득 흘러넘치는 요즘 같은 때 이렇게 서정시 같은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 있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입니다.

텁텁하면서 털털한 만화라고 봅니다. 보는 동안 소주 한 잔 생각나고,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띈 채, "너 그거 알아? 내 마음이 어떤지?" 하고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픈 만화라고도 봐요.

모두 남녀 사이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이 또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일 테지요? 먹고사는 일, 사회를 올바르게 가꾸는 일 못지 않게, 사람이 서로 만나 헤어지고 부대끼며, 울고 웃는 일도 소박하고 평범하면서 아주 중요하잖아요.

꿈만으로는 살 수 없으나 꿈으로도 살아가면 즐거울 세상을 꿈꾼 만화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이루는 사랑, 이루지 못하는 사랑,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모두 어울리면서 풀어내고 맺는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송채성씨이니까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가짜 공상과학만화와 판타지만화가 판을 치고, 사람을 너무도 쉽게 죽이고 살리는 무협만화가 판치는 요즘이거든요. 만화책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에 가 보아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찾아보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더구나 보통사람들이 보통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다가도 가슴 짠할 만한 만화가 드문 요즘이에요. 이럴 때 송채성씨 만화 <취중진담> 세 권을 만나 본다면 참 흐뭇하리라 봅니다. 소박한 웃음, 평범한 눈물을 담은 만화입니다.  

출처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s10600&no=17729&rel_no=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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