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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취중진담

[Psycomic-Na] 따뜻한, 너무도 따뜻한 - 송채성의 만화들
따뜻한, 너무도 따뜻한 - 송채성의 만화들

by capcold

어떤 작가에 대한 '론'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조건이란 무엇일까. 단행본 #권 이상, 단편 #편 이상, 경력 #년 이상, 지명도는 00한 정도? 물론 말도 안 된다고 보지만, 그래도 내심 엇비슷한 '기준'이 있기는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번쯤 어떤 이유에서이든 간에 여.하.튼. 다루어보고 싶은 공명을 주는 작가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필자의 경우 '취중진담'의 송채성이 그 경우다.

2000년 여름, 모 웹진의 편집회의. 골방에 음험하게 모인 그들은 이번 호 커버기사로 '작가를 망치는 공모전'을 다뤄내기로 한 후 기고만장해 있었다. "요새는 공모전으로 쓸만한 신인이 등단하는 경우가 너무 없어!"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오고가며, 여러 유수의 작가들과 잡지들이 싸잡아 매도당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한 명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나인' 공모전 당선작 봤어요?" 제 3회 서울문화사 만화대상 '나인' 부문 동상 작품 '전국노래자랑'. 뭐 전형적인 <...전반적으로 응모작의 수준이 떨어져서...에, 또...> 스타일 - 즉 두둑한 상금의 금상, 은상은 수상작 없이, 동상 하나만 덜렁 선정하는 한국형 만화 응모전 결과 속에서 당선된 작품이었다. 혹시 미형 캐릭터가 없고 화려한 이야기가 없는 궁상스러운 이야기라는 이유로 더 큰 상이 좌절당한 것이라면, 땅을 치고 통탄해 마땅한 수작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도대체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뒷조사가 들어갔다. 한겨레 만화학교, 더듬이, 메가툰 등의 단서들을 쫒다가 발견해낸 것은 충격적이게도 작가가 남.자.라는 점이었을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 나인에서 <취중진담>의 연재가 이어졌고, 곧바로 단행본 1권 출간이 따랐다. 그리고는 나인의 폐간. 그러나 연재 중단과는 관계없이 계속 원고는 단행본 전용으로 만들어서, 2권의 단행본 출간.

<전국노래자랑>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기에는 이전 동호회 활동 당시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인디적 감수성의 실험적 시도들이 주류 순정 만화계의 감수성과 적절히 배분되어 섞여있는 일종의 전환점인 동시에, 작가가 이후 '취중진담' 시리즈에서 계속 펼쳐나가게 될 주제의식의 원형이 담겨있다. 특히 그는 시각적 표현력과 스토리적 감수성을 십분 활용하여 화려하지 않은, 그렇다고 해서 섬뜩하지도, 남루하지도 않은 일상의 생활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스토리상에서의 일상의 포착이라는 것은,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한마디로 이미 드러난다. 집에서 일요일날 나이 좀 드신 가족들과 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칠,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상인 것이다(!). 이런 미덕들은 역동적인 앵글의 장면 연출에서 떠오르는 '마츠모토 타이요'라는 이름을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는다.

2002년 봄 현재 2권까지 출간중인 '취중진담'은 송채성의 단편집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장기 연재물이다(연재 자체가 워낙 에피소드 방식이다 보니, 작가의 다른 단편들을 하나씩 끼워넣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천천히 읽기 시작하면 <전국노래자랑>의 감수성이 주류 잡지 연재와 어떻게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흥미가 생길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시각적 면에 있어서, <취중진담>은 <전국노래자랑>보다 여러 걸음 후퇴했다. 아쉽게도 다양한 표현적 시도들은 상당 부분 사라졌으며, 본격적으로 '노골적인 미형' 인물들이 등장한다.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시각적 충격이 없는 무난한 진행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주인공들만 미형이고, 조연과 엑스트라들은 여전히 정말 '대충 생겼다'는 것이다. 덕분에 단순히 감상적으로 흘러가기 쉬운 이야기의 경우에도 강한 낙천성이 부여되어 있다. 사실 아직도 타다 유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하게 남아있는 미형 캐릭터들보다, 이들이야말로 작품에 빛을 더해주고 있다.

사실 취중진담의 스토리들은 <전국노래자랑>이나 <종착역>등의 단편에서도 그랬듯이, 거의 항상 '사람의 따뜻함'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들은 속마음은 따뜻하지만 타인 혹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오해나 불만을 품었으나, 워낙 만성적이라서 그 자체가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리고 술(노래자랑, 기차표 구매 등)을 매개로 해서 작은 '사건'이 한번 터지고, 그것을 계기로 그들간의 거리가 다소 좁혀진다. 그리고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

그의 주인공들은 결코 (비록 아무리 미형으로 그려진다 할지라도 작중에서 만큼은) 지나치게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중간치 인생들이다. 극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크게 극적이지 않은 작은 사건을 겪는 일상적인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오버하지 않고 훈훈한 미소를 줄 수 있는 것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속마음은 따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술을 먹더라도 결코 술을 먹고 개가 되어 나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 술을 먹고 솔직해지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람들만이 있다는 말이다. 차가운 사람이 감화를 통해서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따뜻한 사람들이 서로 접점을 못찾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서 접점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작가 자신이 자기 생활과 그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며, 여기에서 오는 훈훈함 덕분에 송채성의 작품은 언제라도 다시 한번 들추어 보고 싶도록 만든다.

하지만 모든 장점들은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 온 세상이 따뜻한 사람들로만 가득찬 세계는 30페이지를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은 실제 세상은 조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의 반증인데, 일상의 소소함에 기반한 즐거움이라는 측면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따뜻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도 들어가야만 한다. 따뜻한 사람들만 나오는 이야기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현실성이나 극적 재미가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 에피소드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패턴화와 동어반복이 진행될 수 밖에 없는데, 특히 그 와중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 가장 쉽게 요구될 수 있는 신파조의 '두 남녀간의 사랑' 스토리에 고착되는 것이다(실제로 취중진담 1권에 실린 초반의 에피소드들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 방식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와, 따뜻한 사람만 있는 일방적 세계라는 시시각각 조여오는 벽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작가가 추구해야 할 커다란 과제인 것이다. 물론 자신의 장점을 버려가면서까지 반드시 김혜린류 대하 서사극의 긴 호흡을 추구해야한다거나, 차가운 현실을 리얼리즘 방식으로 그려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다양한 시도들을 추구해 볼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날로 능숙해지는 연출과 필치보다는, 거칠더라도 기발하게 와닿는 단 한순간이 더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애초에 필자가 송채성에게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로 하고라도, 냉소와 회의가 난무하는 90년대 이후의 한국 순정만화계에서 진솔할 정도로 따뜻한 정서의 작가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환영할 만 하다. 부디 주류만화계의 패턴화된 관행들에 함몰되지 않고 꿋꿋이 여러 시도들을 계속해보기를,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성장'을 거듭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기사: Capcold
▶ 등록: 2002/08/29

출처[Na]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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